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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연등, 그 뒤에 숨은 사람들

by 반짝이는멜론님 2025. 5. 30.

눈부신 연등, 그 뒤에 숨은 사람들
눈부신 연등, 그 뒤에 숨은 사람들

 

부처님오신날이 다가오면 사찰마다 수천 개의 연등이 하늘을 수놓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듯한 그 연등들은 때로는 연꽃처럼, 때로는 용의 형상으로 사찰 안팎을 환하게 비추며 축제의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이 아름다운 장면만 보고 그 뒤에 있는 '연등을 만드는 사람들'을 잊곤 합니다. 빛나는 연등의 이면에는 실을 감고, 풀을 바르고, 꽃잎을 한 장 한 장 붙이며 부처님을 향한 정성과 수행의 손길이 숨어 있는 것입니다.

 

연등 제작, 그건 예술이자 수행입니다

연등은 단순한 장식품이 아닙니다. 그것은 불교의 '자비와 지혜'를 나타내는 불빛이자, 사람들의 소망을 실어 하늘로 보내는 상징적인 매개입니다. 그래서 만드는 과정은 단순한 수공예가 아니라 하나의 수행이자 기도로 여겨집니다.연등 제작은 보통 나무틀이나 철사틀에 한지를 붙이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그 후 연잎 모양으로 잘라낸 색종이를 정해진 모양에 따라 하나하나 붙여야 하며, 오색지나 경전을 인쇄한 종이를 겹쳐 넣기도 합니다. 작업은 단순한 반복 같지만 그 속엔 정성과 인내, 그리고 조용한 시간들이 쌓입니다.

제작에 참여한 봉사자들은 "한 장 한 장 꽃잎을 붙이는 동안 내 마음속 짜증과 욕심도 조금씩 내려놓게 된다"고 말합니다. 누군가는 가족의 건강을, 누군가는 자신의 괴로움이 없어지기를 위해 연등 하나에 진심을 담는 셈이죠. 이렇듯 연등은 수공예와 종교, 그리고 사람의 마음이 하나로 묶여 만들어지는 가장 인간적인 불빛입니다. 연등을 만드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마음을 비우고 집중하게 되며, 이것이 바로 명상과 같은 효과를 가져다줍니다. 매년 이 시기가 되면 사찰은 조용한 작업장으로 변하고, 그곳에서는 말없는 기도가 계속됩니다.

 

 연등을 만드는 손, 이름 없는 사람들

사찰에서 연등을 만드는 이들은 대부분 신도회 어머니들, 노보살님들, 지역 자원봉사자들입니다. 그들은 매주 정해진 요일마다 사찰에 모여 바르게 앉아 하나의 연등을 만듭니다. 노란 연등, 분홍 연등, 용머리 등을 이루는 큰 연등까지 모두 이분들의 손끝에서 피어납니다.자신의 이름은 밝히지 않지만, 사찰에 수십 년을 다니며 연등 제작을 해온 어르신도 많습니다. 어떤 이는 "연등 하나가 내 아들 같고, 내 기도 같아"라고 말합니다. 이 말 한마디에 연등이 단순한 '등불'이 아니라는 사실이 담겨 있죠. 사찰에서는 매년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두 달 전부터 연등 제작을 시작합니다. 연등이 만들어지는 공간은 법당 뒤 작은 공방, 요사채 옆 천막, 때로는 주차장 한켠일 수도 있습니다. 이곳에서 봉사자들은 조용히 모여 앉아 각자의 몫을 해냅니다. 사찰 축제 당일 연등이 불을 밝히면 그 빛은 단지 조명이 아닌 수많은 익명의 손길이 모여 만든 수행의 기록입니다. 그래서 사찰 축제의 진짜 주인공은 무대 위가 아니라 무대 뒤편에 있습니다. 화려한 연등 행렬 뒤에는 항상 이런 조용한 손길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특별한 연등, 수작업으로 피어나는 상징

요즘 사찰에서는 단순한 연꽃등뿐 아니라 용등, 연화등, 탑등, 아기부처님등 등 다양한 상징을 가진 '조형 연등'이 제작됩니다. 이런 연등은 사찰의 역사와 정체성, 신도들의 소망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하는 특별한 프로젝트입니다. 이러한 연등은 일반 등보다 몇 배의 시간이 걸리고,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에 전통 연등장인이나 사찰 내부의 숙련된 신도들이 함께 작업을 진행합니다. 철사를 휘고, 고정을 위한 뼈대를 만들고, 종이의 결을 고려해 마감 처리까지 모든 과정은 손과 마음이 완벽하게 협력해야 가능한 작업입니다. 서울 조계사, 부산 범어사, 통도사 등 큰 사찰에서는 매년 이 특별 연등 제작을 위한 공동 작업장이 따로 마련되며, 지역의 예술가나 젊은 봉사자들도 참여해 불교 전통의 계승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제작된 조형 연등은 부처님오신날 연등행렬의 맨 앞을 장식하거나 사찰 중앙의 전시장소에 설치되어 연등축제의 상징으로 남습니다. 특히 용등의 경우 여러 명이 함께 들고 움직여야 하는 큰 작품으로, 제작부터 운반까지 모든 과정에서 공동체의 힘이 필요합니다.

 

연등 제작의 숨은 이야기들

연등을 만드는 과정에는 많은 숨은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어떤 할머니는 손자의 대학 합격을 기원하며 한 달 내내 연등을 만들었고, 어떤 아저씨는 아내의 병이 낫기를 바라며 퇴근 후마다 사찰에 와서 연등 작업을 도왔습니다. 이런 개인적인 기원들이 모여 하나의 큰 축제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연등 제작에는 나이나 성별, 종교의 구분이 없습니다. 불교도가 아닌 지역 주민들도 많이 참여하며, 때로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체험 프로그램으로 참여하기도 합니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함께 앉아 종이를 오리고 풀을 바르는 작업을 통해 마음이 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어린이들이 참여할 때는 사찰 전체가 더욱 활기를 띕니다.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훨씬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연등을 꾸미며, 때로는 예상치 못한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이런 모습을 보며 어른들도 자연스럽게 미소를 짓게 됩니다. 연등 제작은 단순한 봉사활동을 넘어 세대 간의 소통과 지역 공동체의 화합을 이끌어내는 소중한 시간이기도 합니다. 할머니가 손녀에게 연등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고, 이웃끼리 서로 도우며 함께 작업하는 모습에서 진정한 공동체의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보지 못한 연등의 진짜 빛

사찰의 연등은 화려한 불빛이지만, 그 빛이 진짜 아름다운 이유는 그 안에 담긴 수많은 손길, 마음, 기도, 인내가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이름도 없이 한지를 자르고 풀을 바르고, 조용히 기도하며 연등 하나를 완성합니다. 그 연등은 누군가의 소망이고, 어쩌면 누군가의 슬픔과 감사가 담긴 시간이기도 하겠죠.다음에 사찰 연등을 본다면 그 빛 속에서 단지 색깔과 모양을 보기보다, 그것을 만든 누군가의 따뜻한 손을 상상해보세요. 그 순간, 연등은 더 이상 장식이 아닌 마음의 등불이 될 것입니다. 연등축제가 끝나고 연등을 정리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축제가 끝났다고 해서 함부로 버리지 않고, 정성스럽게 분해하여 재활용할 수 있는 부분은 다시 사용하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소각하여 자연으로 돌려보냅니다. 연등을 만들 때와 마찬가지로 정리할 때도 정성과 마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렇게 연등 하나에는 만드는 사람의 정성, 보는 사람의 감동, 그리고 정리하는 사람의 배려까지 모든 과정에 사람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연등의 진짜 아름다움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