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채식은 심심하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벌어진 일
사찰 음식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제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는 솔직히 '맛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기름기도 없고, 고기도 없고, 자극적인 양념도 전혀 쓰지 않는다는 설명만으로도 이미 제 식욕은 줄어드는 듯했죠. 그런데도 불구하고 저는 한 번쯤 템플스테이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에 신청서를 냈고, 그곳에서 마주한 사찰 음식은 제 오해와 편견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경험이 되었습니다. 그날 저녁, 산사에 도착해 짐을 풀고 나서 처음 맞이한 일정은 '공양'이었습니다. 정갈하게 정리된 공양간. 벽 한쪽에는 계절이 담긴 채소 반찬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모두가 묵언 속에 자신의 발우에 음식을 담고 있었습니다. 나무 그릇에 담긴 밥 한 공기, 된장국, 들기름에 무친 나물들... 그 순간만큼은 마치 시간도 소리도 멈춘 듯했어요. 앉자마자 들려온 건 스님의 발우문.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지, 그 공덕을 생각하며…" 그 짧은 문장 하나에 제 마음이 묘하게 가라앉았습니다. 아, 이건 단순한 식사가 아니구나. 그게 바로 사찰 음식이 제게 건넨 첫 인사였습니다. 도시에서는 늘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를 해왔던 제게, 이 고요함은 낯설면서도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모두가 자신의 밥그릇을 소중히 대하는 모습, 음식을 남기지 않기 위해 처음부터 적당량만 담는 배려심, 그리고 무엇보다 그 맛... 처음 예상과는 달리 담백하지만 깊은 맛이 입안에 퍼졌습니다.
🍲 사찰 음식은 밥상이 아니라 철학이었다
제가 체험한 사찰은 충남 공주의 작은 산사였습니다. 1박 2일 프로그램 중 첫 공양을 함께 준비하는 시간이 있었어요. 그곳에서 처음 들은 개념이 바로 '오신채 금지' 였습니다. 마늘, 파, 부추, 달래, 흥거. 이 다섯 가지는 불교 수행자들이 마음을 어지럽힌다고 믿어 금하는 식재료라고 해요. 저는 처음엔 그걸 빼고 어떻게 맛을 낼 수 있을지 의문이었어요. 그런데 막상 음식을 먹어보니, 정말 놀랍도록 깊고 순한 맛이 느껴졌습니다. 그날 밥상에는 들깨버섯볶음, 두릅무침, 청포묵무침, 콩비지전, 된장 깻잎조림이 올라왔고, 소금과 간장, 들기름만으로 간을 맞춘 그 음식들은 하나같이 조용히 입 안에서 퍼지며 재료 본연의 향을 전했어요. '이건 조리라기보다 배려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죠. 재료를 존중하고, 먹는 사람의 속을 먼저 생각한 그 방식은 저 같은 외부인에게도 고요한 존중으로 다가왔습니다. 함께 식사하던 스님께서 그러셨어요. "음식은 배를 채우기 위한 게 아니라, 마음을 깨끗이 하는 시간이기도 하지요." 그 말이 참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식사 중엔 말하지 않고, 식사 후엔 조용히 그릇을 씻는 일까지도 수행의 연장이었어요. 그 모든 과정이 '음식을 소중히 여긴다'는 걸 몸으로 익히는 순간이었습니다. 주방에서 함께 일하며 스님들의 요리법을 배우는 시간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분들은 야채를 다룰 때도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를 대하듯 정성을 다했습니다. 칼질 하나, 씻는 방법 하나까지도 어떻게 하면 재료의 본질을 해치지 않고 그 맛을 살릴지 고민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특히 인상 깊었던 건 음식물 쓰레기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야채의 뿌리, 껍질, 심지어 물기까지도 버리지 않고 다른 요리에 활용하는 모습을 보며 도시 생활에서의 제 낭비가 얼마나 심했는지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 채식의 깊이, 그날 이후 달라진 식탁 위의 철학
다음 날 아침 공양은 더욱 단순했습니다. 찰밥, 된장국, 콩나물무침, 고사리나물, 무말랭이, 배추김치. 이 여섯 가지로 구성된 밥상은 겉보기엔 소박했지만, 하나하나의 맛이 선명하게 기억났습니다. 속이 편하고, 식사 후 졸리지 않았으며, 입안은 개운했고, 마음은 가벼웠어요. 그건 단순히 '소화가 잘 됐다'는 느낌을 넘어서, 마치 몸 전체가 정화된 것 같은 상태였습니다. 이전에는 한 끼 식사가 그저 배를 채우는 수단이었다면, 사찰 음식은 저에게 '한 끼를 마주하는 태도' 자체를 바꿔놓았습니다. 음식을 천천히 바라보고, 감사하며 먹고, 마지막 한 숟가락까지 아껴 먹게 되는 이 과정은 삶에서 너무 당연하게 지나쳤던 '식사'라는 시간을 완전히 새롭게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집에서도 가끔 '사찰식 한 끼'를 실천하고 있어요. 마늘이나 파 대신 된장과 들기름으로 맛을 내고, 볶기보다는 무치고, 짜기보다는 순하게 담는 그 조리법은 입맛뿐 아니라 마음까지 달래주는 듯했습니다. 물론 저는 완전한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사찰 음식 덕분에 채식에 대한 시각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먹고 싶은 것'에서 '몸이 원하는 것', '입을 위한 식사'에서 '삶을 위한 공양'으로 한 끼의 가치가 달라졌어요. 템플스테이 이후 집에 돌아와서도 채소를 대하는 제 마음가짐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이제는 슈퍼마켓에서 채소를 고를 때도 그 생명력과 여정을 생각하게 됩니다. 농부의 손길, 자연의 혜택, 그리고 그것이 제 몸에 들어와 건강을 선물해준다는 사실에 감사함을 느끼게 되었어요. 또한 평일 저녁마다 서둘러 먹던 식사 시간도 조금은 여유롭게 바뀌었습니다. 한 주에 두 번은 고기 없이 채소만으로 차린 식탁을 마주하며, 그 날만큼은 스마트폰도 TV도 끄고 오직 음식과 대화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그렇게 차분히 식사를 마치고 나면, 몸도 마음도 한결 가벼워지는 걸 매번 느낍니다.
🙏 사찰 음식이 내게 건넨 조용한 질문 하나
사찰 음식은 단지 육식을 피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건 '자연을 덜 해치는 방식으로 살아가기', '과하지 않게 욕망을 조절하기', '잠시라도 고요하게 나를 돌아보기'라는 질문을 내 삶에 던져주는 행위였어요. 그날 이후 저는 식사라는 행위 자체가 명상처럼 느껴졌습니다. 가만히 식탁에 앉아 찻물을 끓이고, 된장을 풀고, 한 접시의 나물을 담아내는 시간이 단지 요리를 넘어서 나를 정리하는 시간이 되었어요. 조금 느리게 살더라도 그 안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는 걸, 사찰 음식은 조용히 알려주었습니다. 가끔 도시의 음식점에서 정신없이 식사를 마치고 나올 때면 사찰 공양간의 그 조용했던 공기와 된장국 냄새, 그리고 나무 젓가락의 온기가 그리워지곤 합니다. 한 끼 식사로 마음이 씻겨 내려가던 그 느낌을 나는 이제 '채식'이 아니라 '정화'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요즘 주변 사람들에게 사찰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맛이 없을 것 같다'고 말하는 친구들에게 제가 경험한 깨달음을 전하면, 그들도 호기심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지난 달에는 몇몇 친구들과 함께 사찰 음식 요리 클래스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그들도 저와 같은 놀라움을 경험했을 때, 이 단순하지만 깊은 철학이 서서히 우리 일상에 스며들고 있다는 생각에 뿌듯함을 느꼈습니다.식습관이 바뀌니 자연스럽게 소비 패턴도 달라졌습니다. 필요한 것만 구매하고, 버리는 것을 최소화하려 노력하게 되었죠. 환경에 대한 관심도 더 깊어졌습니다. 한 끼의 사찰 음식이 제 삶의 방향을 이렇게 바꿔놓을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상처 입은 마음을 위로하거나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있을 때면, 저는 이제 사찰식 한 끼를 준비합니다. 그 과정 자체가 명상이 되어 내 안의 소리에 귀 기울이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채식이 심심하다고 생각했던 제게, 사찰 음식은 오히려 더 깊은 맛, 더 풍요로운 삶을 선물해주었습니다.